문명과 인류

인더스 문명에 관하여

문명과 인류 2023. 1. 29. 19:48

-인더스 문명이란?

인더스 문명(Indus civilization)은 또 다른 명칭이 있다. 인더스 계곡 문명 (Indus Valley Civilizatio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청동기 시절 존재했던 문명이며 기원전 약 5,300년 전부터 3,7000년 전까지 존재했는데 이 문명의 최전성기는 약 4,6000년 ~ 3,900년 전 사이라고 전해진다. 현재 파키스탄의 북서쪽과 인도에 걸친 가가하크라강과 인더스강 걸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다. 하라파 문명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처음 발굴됐던 유적지가 하라파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스문명은 비교적 최근에 알려지게 된 문명이다. 인도의 경전 속 인더스 문명이란 고대문명과 관련된 글이 암시되어 있었으나 학자들에게 무시당했다 한다. 하지만 인더스문명은 1921년 마샬(J.Marshall)이란 학자가 거대도시를 발굴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인더스문명의 정확한 형성과 기원은 굉장히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인데 증거가 아직 많이 부족하여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렵다. 기원전 2,4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문명과 함께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는 더 이상 학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가설이 되어버렸다. 최근 이란어원을 발굴했는데, 그 결과 이러한 전파혼이 신뢰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 타르사막부터 아라비아해까지 중앙아시아 평원, 페르시아 지역까지 이르는 인더스 문명은 정말 광대하다. 여태까지 발견된 유적은 1,50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1,058곳은 정착지고 나머지는 야영지라고 한다. 130만 평방킬로미터가 인도대륙 북서부에 퍼져있는데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들과 비교했을 때 두 배나 넓다고 한다. 인더스 문명에서 유명한 유적지는 간웨리왈라, 하라파, 모헨조다로, 돌라비라,. 라키 가리 등이 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사라스바티강, 인더스강 일대에 있었다. 현재는 사라스바티강이 사라졌지만 이 지역은 지그재그 패턴을 형상하고 있다 한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 돠 수메르인들은 매우 활발히 교류했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온갖 유물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비교적 최근에는 페스리아 지역 고대 문명과 인더스 문명의 유사성이 있다고 하는데 발루치스탄의 유적과 인더스 계곡의 유물들이 기원전 페르시아 문명과 같은 지역에서 발견됐다는 주장도 있다.

 

- 인더스 문명의 사회 

고고학 기록들을 찾아보면 인더스문명은 권위주의적 사회였다고 한다. 계급을 갖고 있었으며 그에 맞는 정치적 제도가 있었다. 거대한 곡물창고는 물론 능률적인 배수로체제도 갖고 있었다. 계획적인 주거형태는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렇게 거대한 인더스 지역은 고도의 중앙집권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나타날 수 없는 형상이었을 것이다. 이 통제들이 독재적인지, 군주적인지, 민주적인지, 제사장적인지 정확한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또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같이 왕권 세속으로 유지가 된 건지, 아니면 이집트문명 처럼 신적 왕인 파라오와 같은지, 수메르인들처럼 제사장에 의한 정치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인더스문명에서 사용했던 언어는 드라비다어족과 비슷하다고 한다. 현대의 컴퓨터 분석으로 알게 된 결과다. 하지만 이 언어를 안다고 해서 역사를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거나 그런 건 없다. 언어학자들에게 유익하나 역사학자들은 딱히 상관없다는 거다.

 

인더스 문명의 멸망은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예측가능한 건 인더스강의 범람과 이러 인한 경로 변화, 약 1,500년경 전에 시작된 인도아리아인 침입, 벽독을 굽기 위해 파괴했던 대규모 삼림, 사라스바티강의 소멸 등이 예측된다.

 

과거에는 인도아리아인의 침입을 가장 유력한 멸망 원인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유적지에서 발굴된 기록물들은 이 가설을 입증하기 어려웠다. 신체 손상 유골, 대규모 발굴 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더스강이 범람하여 멸망했다는 가설도 잠깐 반짝했지만 이 가설도 폐기되었다. 모헨조다로라는 학자는 범람으로 인한 대류모 피해를 세 번이나 발견했지만 이 문명에 살던 사람들은 피해를 바로 도시를 재건축했다는 기록을 가져와 입증되지 못했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대규모로 파괴된 농경과 토지등이 문제라 여겨진다. 사라스바티 강은 소멸됐지만 이건 좀 무리라는 주장이라 학자들 사이에선 그다지 설득력있는 가설이 아니라 한다.

 

약 7,000년 전부터 5,600년 전까지 지역화 시대라 하며 이는 1,4000년 동안 이어져왔다. 이때 건축과 농업 목축 기술이 발달했는데 심지어 녹로로 제작된 도자기 등 서로 다른 종류의 도자기들이 제작됐다 한다. 유약 바른 토기, 인장 등이 발견되어 다양한 공예품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으며 돌을 다듬어 장신구로 제작한 보석 세공 기술도 발전했다고 한다. 이 독특한 기술들은 산길과 물길을 건너 이어져온 교류를 통해 주변 일대 사방으로 퍼졌다고 한다.

 

인더스 문명에서 진흙으로 만들어진 작은 사각형 벽돌들이 많이 발견됐다. 이것으로 주택을 지었으며 방과 창고가 칸막이로 나눠져 있었다 한다. 곡물 등을 보관하기 위하여 창고를 지었다. 이때 도가기 기술은 정교하지 못했는데 대신 역청으로 칠해진 바구니들이 무덤과 주택들 주변에서 발견 됐다 한다. 장신구도 착용하고 다녔으며 장신구는 '동물 뼈, 바다 조개' 등으로 제작이 되었다.

 

8,500년 ~ 7,500년 까지는 초기 식량 생산 시대였다. 사람들은 흩어져 살기도 했으며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은 양, 염소, 소, 달과 같은 가축들을 길렀으며 밀과 보리를 재배하기고 했다 한다. 이들이 주식으로 정확히 뭘 섭취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호밀, 참깨, 콩 겨자도 재배했으며 심지어 쌀까지 제배한 흔적이 있다고 한다.